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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팀



축구협회명 

Deutscher Futball-Bund(독일축구협회) 

축구협회 창립일 

1900년 1월 28일 

리그 창립 

1963년 

국가대표팀 첫 경기 

1908년 4월 5일 vs 스위스(3:5) 

역대 최고 FIFA 랭킹 

1위 

월드컵 최고 성적 

우승(1954, 1974, 1990, 2014) 

대표팀 별칭

전차 군단, 더 팀 

최다 출전자 

로타어 마테우스(150경기) 

최다 득점자 

미로슬라프 클로제(71골) 

프로 리그 

푸스발 분데스리가 

리그 현황

 

    세계에서 가장 열광적인 그리이며, 재정 자립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1963년에 설립했지만, 여러 면에서 가장 안정적이다. 2014/15시즌에는 평균 관중이 43,527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전 세계 축구리그 줄에 가장 평균 관중이 많다. 현재 18개 팀이 우승컵을 두고 경쟁한다. 최다 우승팀은 우승컵을 25회 차지한 바이에르 뮌헨이다. 최다 득점자는 독일의 득점 기계 계르트 뮐러로 365골을  터뜨렸다.







[역사]

-막을 자가 없는 축구계의 전차 군단


    

    독일 대표팀 은 독일축구협회가 창립되기 이전 독일 축구는 원래 럭비와 비슷한 규칙을 따랐다. 그러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잉글랜드에서 넘어온 현대 축구가 싹을 틔우시 시작했고, 1900년에 독일축구협회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현대 축구가 독일에 자리 잡았다. 1900년 독일 축구협회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현대축구가 독이에 자리 잡았다. 1900년 1월 28일 라이프치히에서 86개 축구클럽이 모여 독일축구협회를 설립했다. 독일축구협회가 설립되기 전에 독일은 잉글랜드와 다섯 번의 비공식 친선전을 치렀는데, 다섯번 모두 패했다. 1904년 FIFA에 여덟 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08년 스위스 바젤에서 스위스 대표팀과 처음으로 공식 A매치를 치렀다. 경기 결과는 3:5 패배였다.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초창기 시절의 독일 축구를 이해하려면 당시 독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1914년까지 독일 영토는 지금보다 훨씬컸다.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덴마크 영토의 일부분,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의 일부분, 폴란드 영토의 일부분이 독일에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던 보헤미아 지방도 독일축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보헤미아 지방의 프라하가 독일축구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독일 영토가 줄어든 것은 베르사유 조약 때문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영토의 15%를 프랑그와 벨기에, 덴마크,폴란드 등에 헌납해야 했다.

    독일 축구는 나치 통치 시정에 크게 위축됐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오스트리아까지 병합해서 치른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탈락을 맛봤다. 이는 독일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다. 독일축구협회는 이 탓에 제국 체육부의 지휘를 받아야 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도중에도 30회가 넘는 A매치를 치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축구협회는 연합군이 해체했다. 종전 이후 FIFA는 독일이 국가 대항전에 나설 수 없도록 징계했고, 이 징계는 '1950 브라질 월드컵' 이후에야 끝났다.


    독일은 종전 이후 3개의 국가대표팀으로 갈라졌다. 즉, 민주주의 서독과 공산주의의 동독 그리고 자르 보호령(자를란트, 1947~1956년 사이에 프랑스가 관리하다 1957년 1월 1일 서독에 반환했다)이 서로 다른 축구협회를 설립해 국제대회에 나선 것이다. 서독과 동독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대결을 벌였는데, 동독이 해당 경기를 이겼지만 월드컵 우승은 서독이 차지했다.

    독일축구협회의 공식적인 승계자가 된 서독 축구 대표팀은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 헝가리를 맞아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3:2 역전승을 거둬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서독의 승리는 '베른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화제였다. 서독은 그쳤지만,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연달아 우승했다. '유로 1972'에서는 프란츠 베켄바워가 맹활약했고, '1974 서독 월드컵'애서는 득점 기계 게르트 뮐러가 선전했다. 뮐러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토털풋볼' 네덜란드를 맞아 결승골을 터뜨렸다.

    서독의 기세는 계속 이어졌다. 사상 최초로 '1982 스페인 월드컵' '1986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결승에 오른 것이다. 서독은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기어이 우승컵을 차지했는데, 당시 감독인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두 번째 인문( 첫 번째는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이 됐다. 서독의 월드컵에서 우승한 그해에 동독과 서독은 통일했다.


    통일 후에서 독일 대표팀은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다. '유로 1996'에서 우승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독일은 예전의 강력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독일은 이 시기부터 유소년 선수들에게 기술 축구를 가르치고 이민자 2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변화를 꾀했고, 마침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다. 독일은 포르투갈과 알제리, 프랑스, 브라질,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까지 꺾으며 월드컵을 차지했다.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이었다.




독일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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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

-신성로마제국의 국장을 계승하다



    독일 대표팀 의 엠블럼은 단순하다.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모습이다. 2개의 동심원이 있고, 가운데에 독일축구협회의 약자(DFB)가 들어가 있다. 외부 동심원에는 독일축구협회(Deutscher Futball-Bund)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900년부터 1941년 까지는 색상만 다른 엠블럼을 사용했고, 1945년부터 2003년까지는 원이 없어지고 DFB라는 글자만 남았다. 독일축구협회의 알파벳은 사라졌다. 대신 그 아래쪽에 독일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이 들어갔다. 동심원 안쪽은 초록색으로 채워졌고, 그 안에 하얀색 글자 (DFB)가 있다. 독일과 크게 상관없는 초록색을 사용한 이유를 듣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는데, 결국 그라운드의 잔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일부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가장 처음으로 A매치를 치른 아일랜드를 기념하기 위해서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독일과 먼저 경기를 치른 팀은 스위스다. 고로 이 주장은 낭설이다.

    선수들이 유니폼에 달고 뛰는 엠블럼도 몇 차례 바뀌었지만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3개의 동심원이 있고, 가장 바깥쪽 원의 아래쪽은 독일축구협회 엠블럼과 같이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로 채워져 있었다가 최근에야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가장 안쪽 원에 있는 독수리다.


    독수리는 독일 국장에도 들어가는 국가 상징이다. 독수리는 용맹과 위엄, 자유를 상징한다. 신성로마제국뿐 아니라 많은 유럽 제국들은 독수리 국장에 썼다. 962년 프랑크 왕국의 오토 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독수리를 공식적으로 국장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게 일반적은 해석이다. 독일축구협회의 마스코트도 독수리인데 검은 깃털에 노란 부리를 가졌다. 이름은 파울러다.













[유니폼]

-독일의 품격을 그대로 표현한다



    독일 대표팀 의 유니폼은 흰색과 검은색을 주로 사용한다. 1908년 유니폼 상의에는 독일의 상징인 독수리가 새겨져 있던 게 특징이었다. 독일 대표팀의 유니폼은 흰색과 검은색을 바탕으로 국기에 들어간 색상인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변화를 조금 줬다.

    원정 유니폼에는 초록색을 주로 쓰다가 '2002 한일 월드컵' 때부터 검은색으로 바꿨다. 이후에는 빨간색와 검은색 그리고 초록색을 번갈아 가며 썼다. 독일 유니폼은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는 유니폼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너무 고루하다는 평을 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 대표팀



[대표 선수]


-프란츠 베컨바워(Franz Anton  Beckenbauer, 1945년생)



  •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이다. 그의 별명은 카이저(der Kaiser, 황제)로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배켄바워는 선수 시절 리베로(Libero, 자유인)라는 포지션을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다. 지금으로 보면 스위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베켄바워는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후방과 전방을 넘나들면서 활약했다. 수비수로 활약하면서도 준수한 득점 능력과 연계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     A매치를 103경기 치르며 월드컵에 3회 진출헀고, '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발롱도르 2회 수상했다. 바이에르 뮌헨 소속으로 유러피언과 컵위너스커컵에서도 우승했다. 베켄바워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지휘봉을 잡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정가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게르트 뮐러(Gerd Muller, 1945년생)



  •     호나우두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득점 순도가 높았던 인물이다. 게르트 뮐러는 볼품없는 외모에 상대적으로 투박한 기술을 가졌다는 평을 받았지만, 득점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 였다. 별명이 '득점기계'였을 정도다. 독일 대표팀에서 62경기를 뛰는 동안 68골을 터뜨렸다. 




  •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10골을 터뜨렸고, '유로 1972'에서는 4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우승컵을 동시에 들어올렸다. '1974 서독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뮐러는 월드컵에서 통산 14골을 넣었는데 이 기록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호나우두가 경신할 때까지 32년 동안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위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 1964년생)



  •     우아함과 폭발력을 모두 지닌 스트라이커다.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08경기에 출전해 47골을 넣었다. 기술과 스피트 그리고 결정력을 겸비했다는 평가가 많다. '1994 미국 월드컵' 조별 리그 한국과의 경기에서 클린스만이 해슬러의 패스를 공중으로 띄운 뒤 발리슛으로 골을 넣은 장면은 아직까지도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     클린스만은 큰 대회에 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로 1988'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이어진 6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골을 터뜨린 덕분이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유로 1996'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준수한 성적을 냈다. 감독으로 나선 '2006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후 바이에르 뮌헨을 거쳐 미국 대표팀 지휘볼을 잡고 있다. 









[대표 감독]

-요아힘 뢰브(Joachim "Jogi" Low, 1960년생)


   




  • 독일은 월드컵 우승을 네 번이나 한 축구 강국이다. 그만큼 명장도 많다. 그중에서 뢰브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독일 축구의 스타일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좋은 성적까지 거뒀다. 뢰브는 2004년 위르겐 클린스만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자 수석 코피를 부임했다. 그는 클린스만의 그림자로 일하며 독일 대표팀의 전술을 담당했다.                                             
  • 클린스만과 뢰브는 독일 대표팀의 체질을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바꾸려 했다. 독일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이긴 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뢰브는 '유로 2008'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그 와중에 메수트 외질, 토마스 뮐러,토니 크로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독일 대표팀을 정교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고,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과를 거뒀다.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7:!로 격파했고, 결승에서는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기고 우승한 것이다. 뢰브는 만 10년째 독일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대표 축구장]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75,000명)






  •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을 손꼽히는 경기장이다. 공식 대회에서 불리는 명칭은 푸스발 아레나 뮌헨이다. '고무보트(Schlauchboot)'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 경기장을 쓰는 주체에 따라 경기장 색깔을 바꿀 수 있는게 특징이다. 독일 대표팀이 경기장을 쓰면 하얀색, 바이에르 뮌헨이 사용하면 빨간색, TSV 1860 뮌헨이 뛰면 파란색으로 색상으로 바꿀 수 있다. 경기장 안에는 3개의 탁아소와 2개의 팬숍(fan shop)이 있다. 바이에르 뮌헨 TSV 1860 뮌헨이 함꼐 사용하기 때문에 라커룸도 4개인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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